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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유와 과학>,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에서는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다

<비스마르크의 유산>
19세기 후반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 재상(宰相)은 국민의 시민적, 정치적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비민주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독일은 관료주의국가로 발전하면서 전문적 행정체제를 구축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 대중은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 방식은 나치독일과 소련공산주의, 그리고 일본군국주의가 답습하려는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체제는 대다수 국민이 정치에서 배제되어 본질적으로 불안한 체제였다. 


이 불안은 바이마르 자유체제하의 독일인들을 큰 혼란에 빠지게 했다. 시민적, 정치적권리가 미약해 자유에 따르는 책임의식(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양면)이 희박했던 독일인들은 마치 부모 몰래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처럼 누드와 마약에 빠지는 방탕주의로 흘렀다.

 

 그러나 제한적이나마 자유가 주어진 시기에 독일에서는 뢴트겐의 X-ray (1895), 플랑크의 양자(量子)역학(1900),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1905, 1915)등 과학이 크게 발전하고 독일이 과학연구 국제센터가 되기도 했다.

 

기술혁신 분야에서도 두통과 기침을 치료하는 아스피린과 헤로인의 발명, 다임러의 자동차(1887), Lilienthal의 글라이더(1896) 그리고 1900년부터는 제펠린의 비행선, 전기타이프라이터, 전동기관차, Geiger방사능 측정기, 비행기기관포등이 발명되었다. 이 기간에 경제력은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고, 많은 부인들이 자기 자식은 엔지니어가 되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나치정권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된 것이 독일국민에게는 천추(千秋)의 치욕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일시적 안전 때문에 자기 기본권을 포기하는 국민은 자유와 안전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150년전 미국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의 엄중한 경고를 그들이 경청하지 않은 때문이다.
 
폭군 히틀러는 과학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국가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력한 정부이고, 과학은 흉악한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통치에 박차를 가하는 수단이라고  믿었다. 학교에서는 의지의 힘(Will-power)을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과학은 군화로 짓밟으며 성과를 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이 흉측(凶測)한 히틀러의 생각을 전수받았다. 이런 발상은 마치 "과학의 시체"를 매수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발상에서 조작해 낸 것이  인종주의이다.   


’페르시아 귀족‘이라는 산스크리트어(語) '아리안'은, 종족이 아닌 계급을 지칭하는 것인데, 자기들이  최우수 단일민족인 북구(北毆)아리안 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허구(虛構)이다. 더군다나 자기들이 전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발상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게 해주는 것은 '유전자의  다양성'이고 그 것이  종족의 힘인데,  다양성이 부족한 '순혈'이 더 우수하다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합스부르그왕가(王家)가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근친결혼을 장려하다가 유전자가 퇴화되어  멸망한 것이 좋은 실례이다.

 

《나치 과학.기술》

 나치정권은 과학과 거리가 멀었다.   자유토론을 탄압하므로 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다. 2차대전중 나치군 대포의 거의 절반은 프랑스등 점령국에서 생산되었고 공원, 묘지의 철책 등을 약탈해서  원자재로 썼다.  

 

독일의 수수께끼 암호문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으나, 영국이 완전히 해독해 대서양에서의 나치 잠수함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나치과학> 이라고 하면 우생학이나 잔혹한 인체실험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실험으로 살충제가 수백만의 사람을 죽인다는 것 이외에 더 알아낸 것이 없었다. 종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유태인과 집시 인체실험은 그들 중에서 "흑인의 피"를 찾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린이를 안락사시키고, 정신병자, ‘도덕수준이 낮은 자‘를 거세하는 그들의 우생학연구는 과학적가치가 없는 짓이고, 6–7백만명 인명을 학살한 반인도(反人道)범죄였다.  


근자에  모든 독일수상이 아우슈비치를 찾아가 나치 만행에 대해 독일인들이 영원히 책임지겠다고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치의 유태인 무차별학살로 독일의 과학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일례로 괴팅겐 수학연구센터는 폐쇄되기 까지 했다.


과학이 기술발전에 기여한 정도를 판단하는 자료는 과학저널에 실린 논문의 인용횟수인데 그것이 나치정권때 급락했다. 국제과학저널이 게재한 물리학논문의 수도 30%에서  16%로 감소했고, 과학자협회 회원수도 6,884명(1929)에서 3,759명(1937)으로 크게 줄었다.

 

핵물리학자는 미국으로 대거 탈출했다. 1930년 컴퓨터 파이오니어 von Neumann, 태양광의 핵프로세스를 발견한 Bethe가 미국으로 탈출했다.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졌던 Leo Szilard는 영국에서 특허를 받아 해군성에 양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친구 아인슈타인명의 서한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알리도록 했다. 양자물리학의 대가(大家) Max Born과 Erwin Schrodinger도 미국으로 탈출해 맨하탄 프로젝트(원폭개발)에 가담했다. 

 

독일 양자물리학 창시자 Max Planck는 독일을 떠나지 않았으나, 그의 아들은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레이다는 연합국이 발명> 
레이다는 마이크로웨이브 송신기를 필요로 한다. 이 기기를 제쟉하기 위해서는 정부기구, 사기업, 대학교수등이 긴밀하게 협의해야 하나, 나치체제 하에서는 제도적 피해의식 때문에 모두가 협의를 기피했다.  

 

게다가 1차대전 공중전 영웅 Ernst Udet가 나치 기술개발책임자 였는데 그는 기술을 모르는 낭만적인 자로 "레이다를 이용하면 비행이 재미없게 된다"고 레이다개발에 소극적이었다.  


영국이 레이다개발에 착수하고 처칠수상 지시로 마이크로웨이브 송신기모형을 미국으로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레이다를 개발중이던 미국은 "영국모형"대로 곧 바로 생산할 수가 있었다. 


히틀러와는 정반대로 ‘일류과학자’라는 평판이 있던 처칠수상은, 소수의 탁월한 과학자들이 연구개발에 성공하면 숫적 열세를 극복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고 믿었다. 그의 믿음대로, 레이다 덕분에 4대1로 열세인 영국공군이 독일공군을 완전히 견제할 수 있었다.
  
모든 전장(戰場)에서 자유민주 연합국의 테크놀로지가 우월했으며, 과학이 전체주의 독재에 기여하는 지 여부에 관한 실험에서 '과학은 독재를 돕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나치과학이 주저앉은 가장 큰 원인은 자유가 없는 독재사회의 속성 때문이다.  


개방적사회에서는 자유토론과 출판에 의해 활발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과학이 발전한다, 합법성이 부족한 나치정권은  "비밀에의 접근이 권력의 원천"이므로  비판이나 토론을 허용하지 않고, 이견(異見)을  탄압함으로써 정권이 유지하는 체제였다. 과학자들은 비밀경찰이 언제 덮칠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었다. 
                                                   
<공산주의 과학>
 전통을 파괴하는 용기있는 과학 :  스탈린

  낡은 사회를 없애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인간생활에서 비참함과 불공평을 해소하는 것이 맑시즘이고, 이것이 순수한 과학이라고 공산주의자는 주장한다.

 

맑스의 말을 받아들이면 중간정도 교육수준의 사람들은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1967년 헝가리 공산주의 지도자 Lukacs는 "맑시즘 예언이 모두 오류라고 해도, 나는 그 것을계속 신봉할 것이다. 그것이 오류가 아니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고 고백한 Lukacs처럼 진위(眞僞)가 불확실한 맑시즘을 신봉하는 사람이 많은 공산주의국가에서는 과학의 뿌리가 뽑히거나 잘려나가게 된다.  

 

<사회주의 우생학>
 Lysenko는 1940년 부터 25년간 유전학연구소장직을 맡은 괴물이었다  망상가인 그는 스탈린의 '공산주의 과학'과 죽이 맞았다.  촘촘하게 심은 나무는 햇볕과 자양분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약한 것은 도태된다'는 다윈의 이론을 개작(改作)해, Lysenko는 "약한 것은 다른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도우려고 죽는다"고 했다.

 

그것은 식물처럼 인민도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모택동은 이 개작을 차용(借用)했다. Lysenko는 실패한 것을 은폐하고,  성공한 것 만으로 통계를 조작하면서 자기에게 협조하는 자들을 우대했다.


그 결과 곡물수확은 1930년부터 계속 감소하고, 그의 방식으로 심은 과실수는 85%나 시들어 죽었다. 그러나 비판을 통한 과오의 교정기능이 작용하지 못 했다.  Lysenko의 실패를 비판한 우생학자는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농업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곡물수출을 계속해서 흉년에는 600만명이나 굶어죽는 비극이 일어났다.

 

<실험이 부족한 절름발이 과학>
 1965년 미.소 양국 과학자수는 비슷했으나, 소련과학자의 논문수는 미국의 절반 정도였다. 소련의 경제사정상  연구시설이나 도구가 충분치 못 했기 때문이다.  천체(天體)물리학 연구소에는 망원경이 없어 실험을 하지 못하고 연구는 수학분야에 치중하는 형편이었다. 마치 족쇄를 찬 선수들이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핵기술을 훔치다> 
 2차대전중에 미국은 Lend-Lease법에 따라 총 110억불 달하는 엄청난 군사장비(항공기, 기차,탱크, 차량, 대포, 총기, 탄약등)를 소련에 제공했다. 이 방대한 원조프로젝트 때문에 소련군인사들이 수시로 미국 군사기지에 드나들게 되었다.  1943년중에는 그들이 핵개발 비밀자료를 모스코로 보내는 것이 적발되었다.


2차대전중 소련은 장병 860만명을 잃고, 민간인 1,0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뤘다. 소련의 희생을 동정하는 일부 서방(미국,영국,독일)과학자들이 소련을 도와 간첩행위를 자행하고 있었다.


Lend-Lease법은 소련에 군사장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 스파이가 자유롭게 미국을 드나드는 통로도 제공한 것이다.
   
1945년 원자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자, 소련 군사첩보국장은 "미국기술을 반드시(must) 훔칠 것"이라고 공언했다. 4년후 그들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을 똑같이 복사해서 실험했다.

 

<우주 경쟁은 자유와 폭정의 대결> 
케네디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이 달에 가서 탐험하게 한 후에 안전하게 귀환시킴으로써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승리하고 냉전을 종식시키겠다”고 1961년에 선언했다.  

 

세계 모든 국가는 미.소간 경쟁을 지켜보고 나서 "자유나 폭정 중에 무엇을 택할 지"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약속한 대로 목표를 1969년에 달성했다. 

 

<물리학자는 자유민주주의를 선호>
 소련의 중요한 과학자는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면서 반독재로 기울고 있었다. 특히 핵개발과 관련된 물리학자들간에는 자유문화가 생겨나서 Andrei Sakharov나 Yuri Orlov처럼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지도자 다수를 배출했다.   


Orlov는 유럽안보를 위한 헬싱키 협약에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조항을 포함시키고,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을 방해하는 사건"을 보고하도록 하는 규정에도 동의한 것 때문에 반역죄로 몰려 10년 가까이 시베리아에 유배됐다. 

 

노벨상을 받고 소련수소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Sakharov는 1946-68기간 핵폭탄을 개발해 특별히 우대받았으나 늘 연금상태에 있었다. 친구와 인접공원에 니갔다가 총을 들이댄 감시원에 끌려가기도 했고, 노벨상 수상식참석도 거부됐다.


그는 핵실험을 중지하고, 소련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문을 비밀리에  뉴욕타임즈에 게재하도록 했다.  1,000페이지나 되는 그의 회고록원고를 두번 KGB에게 강탈당해서 세번을 다시 써야했다. 그는 6년간의 유배생활후에, 1989년 소련국회에서 정치적 다원주의와 시장경제에 관해 연설을 마치고 몇시간 후에 사망했다. Sakharov는 고르바쵸프와 함께,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핵심인사이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실험>

 소련은 반인도범죄로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고, 비과학적 농업정책으로 수백만명을 굶겨 죽였다. 우주과학, 핵공학 그리고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모두 미국에 뒤떨어졌다. 소련인민들이 등을 돌리고 허망한 공산주의 환상을 걷어차게 되자, 소련과 공산주의는 둘 다 망하는 수 밖에 없었다. 
 
공산주의는 괴물이 정권을 잡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들을 투표로 내쫓을 수도 없는 체제다. 그들의 비과학적 실험이 실패해도 대책이 없다. 결국 "공산주의 자체가 실패한 실험"인 것이다. 

 

<옐친의 고백>
민주적으로 선출된 옐친은, "우리는 맑시즘을 실험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어디에도 맑시즘이 설 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문명국들이 가는 대로(大路)에서 밀려난 것도 알게 되었다."고 망해버린 공산주의자들의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중국공산당의 과학>

 1958년 강청(江靑;모택동의 후처)은 전국을 순방하며, “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고, 스탈린이 교시한 대로 대담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모택동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택동과 강청이 주도해 수천만을 학살하는 문화혁명 광란의 하수인은, 홍위병이 된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다.

 

<대약진 운동>

스탈린방식으로 과학을 배제하고, 공산주의 열정만으로 농업을 개혁하려 한 것이 1950년대 대약진(大躍進)운동이다. 과학.기술을 완전히 무시하고 농민들이 전국각지에 설치한 10,000여개 용광로에서 ”아무것도 없이 열정만으로“ 철강을 생산하도록 한 것이 실패해 2,000만명이 굶어죽은 인류최대 재앙이었다.


생존자들은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보다도 적게 하루 1,200칼로리씩 식량을 배급받았다. 인민이 죽거나 말거나 중국농업의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모택동은 모자라는 곡물을 외국으로 계속 수출했다. 많은 지식인들은 침묵했으나, 국방장관 팽덕회(彭德會)는 모택동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1958 공산당대회에서 공산주의자는 죽음을 찬미해야지 슬퍼 할 일이 아니라고 하고, 그 이유는 "시체가 농토를 비옥하게 하는 비료"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팽덕회 원수(元帥)는 우파 기회주의자로 몰려서 옥사했다.

 

중국의 Sakharov 라고 불리는 북경대 물리학교수 Feng Lizhi는 사회주의를 비판하다가 투옥되자 감옥에서 우주의 구성과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나서  중국공산당과 더 격렬하게 대립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는 유한(有限)하나 경계가 없다"고 증명한 것을 대학에서 가르치자, 공산주의 과학(레닌-엥겔스는 우주가 무한하다고 함)과 상반되는 반동이라고 학생들이 반발했다.

 

Fang은 마치 자유국가에서 사는 사람처럼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또 해외여행을 하면 중국 보다 외국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하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고, 중국체제로는 인민의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1989년  천안문에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고, "과학과 자유"를 외친 학생시위를 부추긴 혐의를 받아 그가 미국대사관에 피신해 있던중에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다.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곳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이 우주의 평등원칙에 따라 진화한 인류가 어찌 인간의 생래(生來)적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단 말인가"라는 게 그의 수상(受賞)연설이었다.

 

모택동이 과학자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객관적 추론능력이 공산당의 적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의 과학이 망해버린 소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각이 없는‘ 중국 공산당원들 행태는 그들 지성이 르네상스 훨씬 이전의 유럽수준에도 못 미치는 듯한 인상을 준다. Fang은 미국으로 망명해  과학과 자유에 관한 중국인의 견해라는 글을 썼다.
 
1. 과학은 의심에서 시작되며, 주어진 사안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다.  오류에 대한 유일한 방어는 의심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2. 의심을 가지면 독립심을 얻는다.  Fang은 대학에서 연구하면서 물리학에서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은 "사고의 독립"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은 진리를 깨우치는 부담을  개인 몫으로 한다.  


3. 과학은 평등하다.  객관적인 과학적진리는 다양한 주관적 견해 위에 존재한다.  그것은 수많은 관찰자의 합의로 도출하고 나서 반복되는 독립적 실험을 거쳐  확인된다.  또 누구나 가설을 제시하면 타인에 의한 실험을 거쳐 진위를 밝히게 된다. 진리 앞에 평등한 것은 법앞에 평등한 것과 같다.
  
4. 과학은 자유로운 정보교환을 필요로 한다.  과학의 요건은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이며,  과학의 번성을 위해서는 민주정치와 ’학문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5.  상대성이론이든 양자역학이든 모든 과학은 보편적이며, 국경이 없다.  "나치과학", "공산주의 과학", "스탈린 과학"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독재체제와 마찬가지로, 인민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기 위해 공산주의는 진리를 독점하는 것 처럼 위장한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시인, 철학자, 역사학자, 오페라작곡가, 영화감독, 세계최고 골프선수라고 신격화하는 것도 인민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한 수법이다.
 
무지한 레닌이론이나,  모택동의 ’빨간 책(little red book)'을 학생들이 외우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죤스 홉킨스 대학 H Miller교수는, 중국공산당은 그들은 과학이 민주적가치를 인증(認證)한다는 사실과, '자유토론'에 의존하는 과학은 원래 반독재적(anti-authoritarian)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중국공산당 보고서(2005년)는 '중국인민은 서양의 부르쥬아 정치제도를 복사해 중국에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lead them nowhere)'하다고 했다. 제2의 모택동인 시진핑은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믿는다.
 
중국공산당의 용어는 바깥 세상을 기만하려는 것이므로 그 보고서의 숨은 뜻을 아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인민은, 공산당을 지칭하는 것이고,  'lead them nowhere'는, 공정선거를 하면 공산당 패배한다는 뜻이며, '민주주의 건설'이란, 공산주의 건설이고 선거가 없을 것이란 의미이다.

 

1921년에 민주주의이념과 과학을 연구한 진보인사들이 맑시즘-레닌이즘과 중국 노동자운동을 통합해 중국공산당을 창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중국공산당은 소련의 지시에 따라 창설된 것이다.

 

'과학적이론이 지도한다'는 것은 공산주의란 말이고, 맑시즘-레닌이즘의 일반적 진리란 '거짓'을 의미한다.  의사결정은 과학적이고 민주적이란 말은, 그들 선거는 공산당이 지정한 후보에 국한한다는 뜻이다. 

 

부정한 수탈과 악행으로 자기들 이익만을 추구하던 봉건왕조의 ‘이기적 부귀영화 문명’전통에 미련이 남아 시진핑과 그 추종자들은 계몽된 근대문명에서 눈을 돌리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또 스스로 과학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는 중국공산당은, 세상을 무법천지로 만들어서 그들이 해적이나 강도가 되어 선진 과학.기술을 훔치고, 아시아 연안국들의 해양주권을 침탈(侵奪)하는 방법으로 세계패권을 잡으려는 획책은, 몽골이나 청(淸)왕조 뿐 아니라, 나치와 스탈린의 수법과 동일하다.
    

<전체주의국가 실패의 교훈> 
1.  과학과 자유민주주의는 실험에 의존한다. 사회적실험은 반드시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그들의 법적권리에 합당해야 한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적 실험의 엣센스는 피드백(feedback)을 통해, 데이터를 재점검하고 결론을 도출하여 수정하거나 실험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뿐이다. 이 제도에서는  실험이  매일 계속되고,그 결과에 대한 반응이 나온다. 그 결과 모두가 이상적이지 못 할 지라도 현존하는 가장 좋은 제도이다.
 
2.  피드백이 없는 시스템, 예컨대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 특히 소련 트로츠키가 제시한 것 같이 ‘강하고, 현명하고, 세련된 공산주의 수퍼맨'의 사회 실현이라는 꿈같은 소리나, 유토피아적 약속은 모두 거짓 환상에 불과하므로 거부해야한다.

 

자유를 포기하면 이상적세계로 바꿀 수 있다는 스탈린이나 모택동의 몽상을 실험으로 증명하지 않고  우리와 후손의 기본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성에 반해 스스로 파탄을 자초하는 것이다.
 
위정자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하면, 반드시 그 제의에 관한 과거의 실험과 관찰 데이터를 요구해야 한다. 그 것이 자유주의와 과학의 기본원칙이다.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은 새로운 것은 모두 실패한다.
   
3.  결과는 수단과 분리시킬 수 없다.  수단이 자유적, 도덕적, 상식적이 아니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배척해야 한다.

 

 

편집,  조 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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