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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정 대통령 이승만, 레닌과 대결>(15)

-《3.1운동의 기획자 이승만》,인보길의 '위대한 3년' 에서

 

'개헌용 과도내각' 박은식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인 1925년 11월에 사망하고 나서 내각수반인 국무령 자리에 이 사람 저 사람이 번갈아 앉았으나 안정될 리가 없었다. 마침내 김구에게 취임요구가 왔다.

 

"상민의 자식인 내가 어찌 국가수반을 맡느냐"며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다는 말이 '백범일지'에 나온다.

 

그의 역할은 박은식처럼 새로운 개헌안 처리용 과도내각이었다. 1926년 12월 김구 국무령 취임초부터 임정(臨政)은 개헌파동에 휩쓸리더니 이듬에 1927년 1월 19일 국회는 소련식 정부를 규정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폐회하였다.

 

"상해 임시의정원에서는 지난 19일 임시 헌법을 계승하야 전부 '소비에트'식으로 하고 관제를 개정하야 국무총리 등 재래의 직제를 폐하고 러시아식으로 노농(勞農) 위원제를 채용하였으며, 집행위원장에 김구씨를 선출하였다."  (동아일보 1927년 1월 23일)

 

일찍이 레닌이 지령과 공작금을 주며 해체하려던 미국식 민주주의 정부는 드디어 이동휘의 꿈대로 적화혁명을 달성하였다. 국제공산주의가 대한민국 임정을 완벽하게 삼켜버린 또 하나의 개헌 쿠데타였다.


이 개헌은 3월 5일 김구 내각에서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김구는 주석으로 선출된다. 내각제 아래 국무령에서 대통령 없는 소비에트 체제의 주석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해 3,1운동이 선언한 독립국가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사실상 사라졌다. 


또 한 가지 여기서 짚어 볼 일이 있다. 3.1독립선언서를 요약한 임정헌법 前文이 개헌과 함께 아예 삭제된 일이다. 비폭력을 강조한 전문이 사회주의 무력투쟁체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 후 김구는 주석 중심제로 개헌하면서 3.1운동이 빠진 임정헌법을 1944년까지 유지한다.

 

그러니까 3.1운동이 세운 임시정부는 장장 19년 동안 3.1운동을 잊어버린 채였으며, 그래서인지 김구 주석은 좌우합작에 응하여 공산당 김원봉(若山 金元鳳 1898-1958)을 각료로 받아들이면서 내우외환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특히 김원봉은 김구가 장체스(장개석)에게 요청한 '임정 승인'을 가로막는 선봉장이었다고 한다.

 

ㅡ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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