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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李仁榮의 “金九 ‘國父’론”은 國家基本을 흔드는 妄言이다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있었던 이인영(李仁榮) 통일부장관 후보의 발언들은 도저히 묵과될 수 없는 정치적은 물론 법적 문제성을 노정(露呈)하고 있다.

 

그는 과거 그가 대한민국의 초대 이승만(李承晩) 정부를 ‘괴뢰정부’라고 호칭했던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거부했을뿐 아니라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생각하지 않고 차라리 김구(金九) 선생을 ‘국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을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 후보자로서는 결코 묵과될 수 없는 중대한 망언(妄言)이다.

 

왜냐 하면, 백범(白凡) 김구는 대한민국 중경(重慶) 임시정부 주석으로 항일독립운동의 거두(巨頭)였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건국보다 통일이 먼저”라는 소신을 앞세워 1947년의 유엔총회 결의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건국에 반대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1948년의 5.10 제헌국회의원 총선거 참여를 거부했고 5.10 선거를 통하여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총회 결의에 의하여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에 참가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다는 것이 부정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1945년8월15일 일제의 패망에 따라 이루어진 한반도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김구가 보여준 행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1947년11월에 출판된 자서전 《백범일지(白凡逸志)》의 제3장에 “나의 소원”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여기서 자신의 정치이념이 “자유”라면서 “독재”에 대한 반대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독재 가운데서도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가 가장 무서운 독재”라는 말로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했었다.

 

그는 특히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러한 독재 가운데서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 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한 그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거부로 인하여 38선 이남에서 실시된 자유민주선거의 수용을 거부하고 이를 보이콧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김구는 5.10 제헌국회 선거를 앞둔 1948년4월 주변의 열화(熱火) 같은 반대를 뿌리치고 평양 방문을 결행하여 4월19일부터 이달 말까지 소련 군정 당국의 배후 조종 하에 김일성(金日成) 중심의 공산주의자들이 차려 놓은 ‘북한 공산정권’ 수립 예행 행사였던 ‘남북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둘러리로 참가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행(奇行)의 주인공이 되었다. 

 

김일성의 북한은 그 뒤 이때 평양을 방문한 김구가 김일성을 만나서 “충성을 서약”하고 “임시정부의 관인(官印)을 김일성에게 바쳤다”는 선전을 해 오고 있다.

 

1948년7월 공산당에게 쫓겨서 이미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臺灣)으로 후퇴한 쟝제스(蔣介石) 자유중국 총통이 유어만(劉馭萬)이라는 이름의 외교관을 서울의 김구에게 보내서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세계 정복 야욕을 경고하면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이승만 • 김구 • 김규식(金奎植) 세 지도자가 ‘합작(合作)’할 것”을 간곡하게 권유했지만 김구는 이마저도 완강하게 거부했다.

 

유어만이 남긴 김구와의 대화록(對話錄)을 보면 유어만이 “타이페이(臺北)에서는 ‘백범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자 “평양에서도 나를 가리켜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자들이 있더라”면서 “내가 이번에 평양에 가보니 저들의 엄청난 군사력을 키우고 있어서 남쪽에서 단독정부를 세워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더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북한의 6.25 남침을 “예언했다”는 기록도 남겨져 있다. 

 

사실이 이러한 데도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이라는 사람이 이승만 ‘국부’론을 수용할 것을 거부하는 것은 고사하고 김구 ‘국부’론을 공식 석상에서 거론한다면 그가 과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입각해서 북한과의 통일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현관(玄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적 차원에서 공론에 붙여 볼 필요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은 대한민국의 존립에 관련된 일인 만큼 소위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이 일을 시정할 것이냐의 여부는 미래통합당의 존폐(存廢)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 미래통합당 김종인(金鍾仁) 대표와 주호영(朱豪英) 원내대표의 시급한 입장 표명을 기대한다.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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