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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구소련 기밀문서, “6·25 전쟁은 북한 남침” 기록

1960년대 구소련 정부 문서 공개로 북한의 남침이 명백히 밝혀져
김일성과 당시 북한 최고지도부, 3단계 계획에 따라 전쟁을 구상
구 소련과 중국은 전쟁전부터 북한의 김일성과 협조
6.25 날짜는 김일성이 직접 결정

올해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와의 전쟁이 있었던 때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에서도 6.25전쟁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 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식이 있었고 이번 기념식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공산화전략에 의해서 자행된 6.25전쟁에 대해 전쟁의 주도자가 북한 김일성이었다는 사실을 명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으며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은 북한의 남침(南侵)으로 시작됐음을 인정한 1960년대 구(舊)소련의 기밀문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문서는 구소련 외무성이 1966년 8월 9일 작성해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부부장이었던 올렉 라흐마닌(1924~2010)에게 보고한 것으로 ‘1950~1953년 조선전쟁과 휴전담화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문서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국민대 선임연구원(한국명 이휘성)은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현대사 문서보관소에서 해당 기록을 찾아냈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이전에도 김일성을 비롯한 구소련 제88독립보병여단(88국제여단) 출신 북한 ‘만주파’ 핵심 간부들의 수기(手記) 이력서와 김일성의 1956년 남한 대선 개입을 실토하는 문서 등을 찾아 주간조선에 제공한 바 있다고 주간조선이 밝혔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이 찾아낸 해당 문서는 “김일성은 미국이 남조선을 위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무력통일에 통과를 받도록 간절히 노력했다”며 “김일성이 1950년 3~4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은 조선인들의 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북한의 모든 문서와 학생용 교과서는 모두 남한이 6.25전쟁을 일으켜 북한을 침략했다고 선전

 

북한 당국은 6·25전쟁 발발 70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남침’을 단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북한 당국이 발간하는 모든 문서들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있고 이 전쟁은 미국과 남한이 “청소한 공화국을 초창기에 박살내기 위해 일으킨 침략전쟁”이라고 하면서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현명한 령도 밑에 북한의 인민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하여 미 제국주의를 우두머리로 하는 외래침략자들과 리승만(이승만) 괴뢰도당의 무력침공을 반대하여 싸워 이긴 “정의의 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모든 문서와 모든 학교의 교과서들을 통해 “미 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 리승만 괴뢰도당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드디여 불의에 공화국 북반부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여 조선인민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다”면서 남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설명하는 증거로써 “기독교국가인 남한이 일요일에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공산국가인 북한에 뒤집어 씌웠다고 주장하며 6.25전쟁을 남한과 미국이 연합하여 일으킨 ‘북침(北侵)’으로 선전하며 교육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해당 문서에 따르면, 소련 당국은 대외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부인해온 것과 달리,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집권(1964~1982) 때인 1960년대부터는 내부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기정사실로 인정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소련공산당의 내부 문서들이 간간이 공개되면서 북한의 남침설이 학계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이번에 공개된 해당 문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추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해당 문서를 찾아낸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러시아 현대사 문서보관소는 1952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라며 “문서를 보고받은 올렉 라흐마닌은 소련공산당 대외연락부 제1부부장을 지냈고,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과 북핵 6자회담 러시아 수석대표를 지낸 블라디미르 라흐마닌의 부친”이라고 지적했다.

 

▲ 김일성과 북한 최고지도부 3단계 계획에 따라 전쟁을 구상

 

이번에 발견된 6·25전쟁 관련 1960년대 구소련 정부 문서에는 6·25전쟁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들도 드러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김일성과 당시 북한 최고지도부가 3단계 계획에 따라 전쟁을 구상했다는 기록이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조선(북한) 지도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한 3단계 계획”이 있었고 “첫째 해당 준비 사업에 38선 인근에 병력을 집결, 둘째 남조선(남한)에 평화통일 제안서를 제출, 셋째 남측이 평화적 제안을 거절한 다음에 무력 작전을 시작한다”고 언급되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실제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단행된 북한의 남침은 구소련 당국의 정부 문서에 언급된 대로 3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첫째 단계인 38선 인근에 병력을 집결하는 작업이 완성된 이후, 6·25전쟁 개전 직전인 6월 7일 북한의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은 ‘평화통일 호소문’을 발표하고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제안했는데, 그 내용은“1950년 8월 5~8일까지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실시해 통일적 최고입법기관을 창설하고, 광복 5주년을 맞이하는 같은 해 8월 15일 남북한 총선거에 의해 선출된 최고입법기관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조국전선은 6·25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6월 25일, 박헌영, 여운형, 허헌 등 남쪽의 공산주의자들과, 김일성, 김두봉, 최용건 등 북쪽의 공산주의자들이 함께 결성한 통일전선기구다. 1961년 결성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에 앞서 비슷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겉으로는 평화통일을 강조하면서, 물밑으로는 전쟁을 준비해온 전형적인 ‘위장평화술’이었던 셈이다.

 

이번 문서에 따르면 개전 직전 북한 김일성을 비롯한 소련 스탈린,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등 공산진영 수뇌부 3자는 미국은 물론 일본의 참전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조선인민군의 추가 부대 설립을 위해 북조선 측에 무기나 군사장비 원조 요구들이 급히 수락되었다고 한다.  또한 중국 지도부는 중국 군대에서 복무했던 조선족 사단을 조선에 파견하고 식량 배급을 약속하였고 일본이 남조선(남한)을 지지해 참전할 가능성을 우려해 한 개의 집단군을 조선과 더 가까운 지역에 파견한다고 약속했다”는 대목도 있어 구 소련과 중국이 전쟁전부터 북한의 김일성과 협조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구소련 외무성은 6·25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병력 상황 역시 상세히 보고하고 있다. “1950년 1월 1일 기준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은 11만명이 있었고, 새로운 사단들이 급히 설립되고 있었다”고 하면서 “남조선군 대(對) 북조선군을 비교하면 병력으로 1 대 2, 포(砲)의 수 1 대 2, 기관총의 수 1 대 7, 따발총의 수 1 대 13, 탱크의 수 1 대 6.5, 비행기의 수는 1대 6이었고, 이 모든 분야에 북조선 군대는 우월하였다”고 평가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압도적 병력 차이는 기존 연구에서도 많이 밝혀진 바 있으나, 구소련 정부 기록에 의해 드러난 점이 의미 있다는 평가다.

 

 

▲6.25 날짜는 김일성이 직접 결정

 

또한 문서는 “조선(북한)군은 날마다 15~20㎞ 정도 전진하고 20~22일만 지나면 군사작전이 대체로 완수될 것이라는 계획을 포함하였다”고 하면서 ‘6월 25일’이라는 개전 날짜는 김일성이 스스로 택일했다고 한다. 문서는 “김일성의 강한 요구에 따라 1950년 6월 25일을 군사행동 시작의 날짜로 결정했다”는 대목도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전쟁과 관련된 5부작 영화 “붉은 단풍잎”을 제작해 남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구체적인 설명을 한바 있다. 영화는 남한이 6월25일을 전쟁발발 일로 지정한 것을 두고 성경은 6일 동안 일하고 일요일은 안식하는 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공산국가인 북한이 기독교를 믿는 남한을 일요일에 쳐들어왔다고 하면 남한이 일으킨 전쟁을 북한이 일으켰다고 넘겨 씌울 수 있기 때문에 일요일인 6월 25일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주간조선에 따르면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해당 문서에 나오는 몇몇 표현들에 비추어 봤을 때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쓴 것 같다”며 가령 문서에 언급되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이름들이 아무런 직위와 직함 없이 그대로 쓴 대목이 객관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탈린의 경우,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이란 완전한 이름 혹은 ‘스탈린 동지’라는 식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는 ‘스탈린’이란 이름으로만 표현되는 점도 대단히 흥미롭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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