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3 (화)

  • 흐림동두천 28.5℃
  • 구름많음강릉 25.0℃
  • 흐림서울 30.2℃
  • 구름많음대전 30.4℃
  • 구름많음대구 33.3℃
  • 구름많음울산 27.7℃
  • 구름많음광주 30.3℃
  • 구름조금부산 28.3℃
  • 구름많음고창 29.8℃
  • 구름많음제주 28.0℃
  • 흐림강화 25.9℃
  • 흐림보은 30.6℃
  • 흐림금산 30.5℃
  • 구름조금강진군 28.5℃
  • 구름많음경주시 31.3℃
  • 맑음거제 28.8℃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김씨일가의 거지근성

- 강도질로 성장한 김일성
- 구걸질의 달인 김정일

- 김정은의 업데이트된 거지행세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 김응우(金膺禹, 1848년 4월 8일 ~ 1878년 10월 4일)는 1862년에 평양지역의 대 지주였던 이평택의 묘지기를 하기로 하고 만경대에 이사해 살기 시작했다.

 

만경대는 북한주민들과 학생들은 물론 방북하는 외국인들의 관광코스에 들어있다.

 

산당집이었던 만경대는 작은 초가집으로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장가를 가서는 처가가 사는 칠골에서 살았다.

 

김형직은 기독교 장로인 김일성의 장인 강돈욱의 차녀 강반석과 결혼한 후에 줄곧 처가가 있는 칠골에서 살았고 김일성도 이곳에서 출생했지만 기독교 선전이 되는 것이 우려되어 만경대를 자기의 고향이라고 거짓선전하고 있다.

 

김일성의 조부인 김보현은 농사꾼이었다. 소작농이었던 김보현은 일생동안 농사만 짓고 살았다.

 

김보현은 슬하에 (김형직, 김형록, 김형권, 김구일녀, 김형실, 김형복) 3남 3녀를 두었는데 김형직이 장남이었다.

 

어려운 살림에 김형직은 장가를 갔지만 18살에 장남 김일성이 출생했고 그 뒤로 김철주, 김영주가 태어나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었다.

 

평양을 떠나 북한의 평북도 중강(지금은 자강도 중강군), 후창군 포평리(양강도 후창군), 팔도구(중국 길림성 장백현) 등지에서 가짜 연세의학전문학교 졸업증을 내걸고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마약장사를 하다가 감옥에 잡혀 고문어혈로 32살에 사망하였다.

 

14살에 부친을 잃은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은 사별하고 혼자 살던 부농 조광준과 재혼하였고 그때부터 김일성은 밖으로 나돌며 중국공산당을 따라다녔다.

 

본명이 김성주였지만 중국공산당에 입당하려고 공산당 군자금 마련을 위해 만주일대의 부자집들은 물론 서민들의 집들도 마구 약탈했던 별동대에서 활동하면서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김일성으로 불리고 있다.

 

김일성의 약탈하던 당시의 활동내용은 재미동포 작가 유순호의 김일성평전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의 당, 국가, 군사의 모든 분야에 대한 통수권을 넘겨받았지만 당시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붕괴되고 북한의 경제난으로 국제사회는 물론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구걸정책을 시작했다.

 

김정일의 구걸정책은 종교계나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 확대되었고 국제사회에 숨겨오던 경제형편에 대해 공개하면서까지 구걸범위를 확대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선친들보다 한 수 더 떠서 구걸정책을 펴고 있다.

북한당국은 지원 량이 적으면 거부하는 방식, 도발수위를 높이면서 몸값을 올리려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들을 쓰고 있다.

 

지난시기에 햇빝정책으로 북한에 막대한 자금을 퍼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도발이었고 핵과 미사일 생산활성화였다.

 

 

현 정부도 무턱대고 북한에 지원만을 할 것이 아니라 비핵화와 북한인권개선 등 중요사안들을 북측에 요구하여 실행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포토뉴스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