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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

리버티 단상(8) 서울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거짓 승리

거짓 승리

   

 

1994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친구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들었다. 둘이 동시에 진짜야?”라고 외쳤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김일성은 불사조 같은 존재였다. 불사조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새다. 500년에 한 번 향나무 불에 타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그를 신화 속 새에 비유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일까. 그저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 같은 존재쯤으로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의 부음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은 무더위 때문인지 먹먹하기만 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평양 시민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목메어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 절규가 품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영화 <대부>에는 알 파치노가 자기 대신 죽은 딸의 죽음 앞에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표정엔 한 인간의 참담한 고통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북한 주민의 울음도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김일성이라는 존재를 삶의 이정표로 여기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그 존재의 부재는 그들 삶의 지향점을 잃은 것을 의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그 울음의 심리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 하나가 떠오를 뿐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소설은 냄새에 천재적 감각을 타고 난 주인공 그르누이의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18세기 프랑스 파리. 이 시대는 박테리아의 분해 활동을 억제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현대인이 상상할 수 없는 악취가 도시 곳곳에 풍기고 있었다.

그르누이는 페르 거리의 생선 좌판 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생선을 파는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이제껏 그곳에서 아기를 낳았다. 생명은 죽거나 반쯤 죽은 채로 태어나 생선 찌꺼기들과 쓰레기통에 버려지곤 했다.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그를 낳아 생선 칼로 탯줄을 잘랐다. 그녀는 칼을 쥔 채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은 생선 내장과 잘린 생선 대가리들 사이에서 온통 파리 떼에 뒤덮여 있는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그녀는 체포되어 그간 유기한 생명에 대해서 자백했다. 영아 살인죄를 받고 참수되었다.

그르누이는 여기저기 맡겨져 자랐다. 열두세 살까지 가죽을 무두질하는 일꾼으로 짐승처럼 살아간다.

그에게는 냄새를 맡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한 소녀의 향기에 취해 그 소녀를 살해한다. 그는 시체 냄새를 맡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향기의 창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마침내 파리 향수 제조인의 도제가 되었다. 3년 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훌륭한 향수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파리를 떠나기로 했다.

동굴 속에서 칩거해 7년 세월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는 공상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산을 내려온다.

어느 후작이 동굴 생활을 한 그루누이를 포장해 유명 인사로 만든다. 그르누이는 자신이 만든 향수를 뿌리고 대중 앞에 선다. 사람들은 그르누이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낀다. 그를 한없이 신뢰했다.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인에게 꿈의 도시인 그라스에 정착한다. 그르누이는 이곳에서 사람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채취하기 위해 처녀 25명을 살해한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살인하고 얻은 향수를 뿌리고 광장에 선다. 그 향수 냄새를 맡은 이들의 마음에 사랑하는 감정이 일었다. 마법과도 같은 향수에 취한 대중은 살인마를 동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사람들의 눈에 그르누이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보였다. 주교마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군중은 무아지경에 빠져 그를 찬양하고 그의 이름을 외쳐댔다. 그중에는 그가 죽인 처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도 있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승리를 맛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르누이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한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 없었다.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하게 되었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했으므로 사랑할 줄도 몰랐다. 그는 스스로 증오하고 증오받는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날이 푹푹 찌는 어느 날, 그는 공동묘지로 간다. 자정이 지나자 도둑, 살인자, 무법자, 창녀, 탈영병, 젊은 불량배 등 온갖 종류의 천민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음식도 끓이고 악취도 누그러뜨릴 생각으로 작은 모닥불을 피웠다.

그르누이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그토록 애써 만든 향수를 이리저리 흩뿌렸다. 그 자리에 있던 부랑인들이 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흡인력에 이끌려 그르누이를 에워쌌다.

갑자기 그를 가운데 두고 치열한 다툼이 일어났다. 그르누이의 옷이 찢겼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떨어져 나갔다. 몸뚱이가 뜯겼다. 그들은 손톱과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단검이 번쩍였다. 도끼와 칼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천사의 몸은 한순간 서른 조각으로 잘렸다.

사람들의 손에 천사의 살점이 한 조각씩 들려 있었다. 그들은 황홀한 쾌감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르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따금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이 이끄는 선동에 휩쓸려 정의를 외칠 때가 있다. 그러나 대중이 외치는 순수한 구호는 한 세력이 기득권을 몰아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는 한다. 그 세력은 선동, 선전이라는 거짓 향수를 뿌려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 실천 없는 힘찬 구호는 허망하다.

그르누이의 왕국에 대한 공상은 북한의 독재자가 꿈꾼 왕국이 연상된다. 한 인간의 과대망상은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냈다. 자신을 부정하는 자들을 철저히 응징했다. 공상을 전제로 자신을 우상화했다.

그르누이는 대중을 굴복시켰을 때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르누이가 느꼈던 슬픔을 알고 있을까. 그르누이는 다른 이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자기를 속이지는 못했다. 그르누이의 종말은 교훈을 준다



글_강수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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