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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운곡목장

김정은의 건강장수연구 실태는?

김정은만을 위한 축산생산기지-운곡목장

 

평양에서 1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순천방향으로 가면 무장 보안원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는 운곡목장에 가닿는다. 이 무장 인원들은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위치한 8호 보안부(일명 주석부 산하 경계근무와 내부 경제법질서위반, 보안 등을 맡아 보는 경찰기관) 소속 보안원이다.

 

운곡목장은 타지방에서 사는 친척들이 찾아와도 친인척방문이 허용되지 않을만큼 통제가 철저한 지역이다. 평남도 순천과 평북도 안주 인접지역에 위치한 이 목장에 사는 사람들은 평양시 중구역 거주 수도시민권을 가지고 평양시 수도시민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

군의 7∼8개 리 면적을 차지하는 이러한 큰 지역의 운곡목장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기에 경계가 심하고 친척들도 그 안에 들어 갈수 없을 만큼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되어 있을까?

이 질문은 여기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맥주를 먹이면서 매일 안마해주어 보장되는 고기용 쇠고기, 특수사료로 생산되는 우유, 무균돼지고기, 칠면조고기, 프랑스 사향오리, 왕비둘기(미국), 오골계, 진주닭과 진주계란, 꿩과 꿩알, 당나귀(목장 내에서는 천우고기라 부른다), 낙타젖, 타조, 토종닭, 누렁개, 소개구리(한마리가 1.5∼2근 정도로 큰 개구리), 어치(깨까치라고 하는 야생을 수십 명 인원이 365일간 사냥한 것을 산채로 사육하다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식탁에 보장) 등의 축산물 생산과 열대 과일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특대형의 유리로 된 온실농장과 야외 야채생산지를 보유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목장이다.

 

광복 후 김일성이 정치적인 반대세력 청산으로 수감하던 정치범수용소가 70년대에 김일성의 식자재 보장 생산지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한 개 군의 거의 절반정도의 큰 규모의 면적이 빙 둘러 막힌 야산 봉우리들로 주변과의 경계 차단이 유리하고 기온과 토양조건이 농축산물을 생산하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평양과의 거리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결국 정치범들은 개천 등 다른 정치범수용소로 이송되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특수 축산물 생산지로 일반 북한주민들에게 마저 알려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내부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대가로 주는 보너스가 제공되고 생활조건은 다른 지역의 북한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다.

운곡목장에는 담배공장, 된장공장, 곡산공장 등 지방산업 공장들이 있고 자녀들을 위한 전문대학인 만청산대학과 농업기사를 육성하는 전문학교도 있다. 만청산대학의 명칭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만년장수와 영원한 청춘을 위한 과학 일꾼을 양성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것이다.

가축사육은 여성노동자들이 하였다. 중앙당 5과에서 각 지방들에 직접 내려가 토대가 좋고 체력과 건강상태를 세밀히 조사하여 합격자들만 선발하였다. 그들에게는 집에 편지하여 자기의 위치나 하는 일에 대하여 가족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철저히 통제되어 있다.

 

운곡목장 구호나무 조작


안주지역의 구호나무가 발견되었다고 소문이 나있던 1990년대 초였다. 북쪽 5km정도를 올라가면 자그마한 호수가 있는데 이 지역사람들은 룡담저수지라고 불렀다. 예전에는 제전저수지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작가들이 글을 쓰는 휴양각도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덕성실기인 ‘인민들속에서’와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등 노동당 역사연구소가 주도하는 기록물들과 ‘4.15 창작단’에 소속된 작가들이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 하는 글들의 상당량을 여기에서 창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의 산들은 연구 성원들도 마음대로 통행하지 못하도록 8호안전부가 경비를 섰다. 북한에선 1980년대 후반부터 갑자기 김일성 일가를 칭송하는 구호나무들이 여기저기서 무더기로 발견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북한은 이런 구호나무들이 김일성의 수하에서 항일빨치산 활동을 하던 대원들이 남긴 글이라고 선전했다.

빨치산 대원들이 김정일의 출생을 ‘백두광명성’ 탄생으로 환호하며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백두산 3대장군’으로 칭송하는 글들을 국내 곳곳에서 나무껍질들을 벗기고 새겨 넣었는데 이제 와서야 발견되었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주장이었다.

1961년 양강도 삼지연군 청봉지구에서 항일빨치산의 숙영지 흔적들이 19그루의 구호를 새긴 나무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북한은 이 나무들을 유리관 속에 보관하고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에 활용했다.

1960년대 말 김일성종합대학 정치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노동당 중앙위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김정일은 당 선전선동부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선전활동에 주력하면서 자신이 백두혈통임을 주장하기 위한 역사왜곡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이 시기 김일성은 신장과 심장혈관에 이상 징후가 발생되면서 후계자 문제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때를 틈타 김정일은 빨치산 출신들을 등에 업고 삼촌 김영주와 배다른 동생 김평일을 곁가지로 몰아 제압하고 후계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지만 출생지가 문제였다. 김일성은 1941년 일제의 대토벌이 시작되자 옛 소련의 국경을 넘어 피신했다. 소련으로 피신한 김일성은 중국과 러시아 군인들로 편성된 극동군 88여단에서 1대대장으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복무했다.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1982년 김일성의 생일 70돌을 맞으며 우리 인민들이 숭배하는 조종의 산인 백두산이 자신의 고향이라면서 최현을 비롯한 몇 명 안 되는 빨치산 출신 생존자들을 내세워 그런 주장에 동조하도록 강요했다. 김정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0년대 초 청봉숙영지를 돌아보면서 그곳에 진열된 구호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자칭 고향이라고 하는 백두밀영에 자신을 칭송하는 구호나무들을 만들어 놓도록 노동당 역사연구소에 비밀지령을 내렸다.

당시까지 북한은 김정일의 고향을 백두밀영이라고 하면서도 백두산의 복잡한 지형으로 인해 아직 백두밀영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인민들을 얼려 넘겼다. 그러면서 한쪽으로 가짜 백두밀영과 구호나무들을 은밀하게 준비했다.

1986년 여름 큰 태풍이 백두산 지구를 지나가며 수많은 나무들을 쓸어 눕혔다. 가짜 밀영과 구호나무들을 준비해 놓고 이를 어떻게 세상에 터뜨려야 할지 구실을 찾던 김정일에게 있어서 그 여름의 태풍은 절호의 기회였다.

김정일은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을 정리하던 중 백두밀영 터를 발견했다며 주변에서 발견된 구호나무들이 그곳이 백두밀영이었음을 증명한다고 요란하게 선전했다. 이렇게 되어 조작된 구호나무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김정일이 1982년부터 백두밀영을 조작해 놓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1980년대 구호나무 조작에 직접 참여했던 체스코슬로바키아 코멘스키종합대학 유학생출신인 혜산농림대학 목재가공학부 김하룡 교수를 통해 1990년대 중반 양강도의 간부들 사이에 암암리에 알려졌다.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의 구호나무 2백여 그루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991년까지 북한 전역에서 1만2천여 점의 구호나무가 발견되었고 선전했다.

그중 김정일을 칭송한 내용은 210점, 김정숙을 칭송한 것은 330점이라면서 구호나무를 영구보존하기 위해 수천만 달러를 아끼지 않았다. 북한의 간부들은 당시 내각 부총리 겸 문화예술부장이었던 장철을 구호나무 조작책임자로 꼽고 있다.

백두산 지구의 구호나무 발굴이 마무리된 1990년 운곡지구에 발굴대가 들어와 구호나무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운곡지구는 김 부자에게 공급되는 각종 축산제품들이 생산되는 특수목장이 있어 누구도 접근이 불가능했다.

특히 운곡지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마두산과 성산, 송래산은 산봉우리까지 완전히 봉쇄되어 누구도 오를 수 없었다. 이런 운곡목장은 1960년대 말까지 북한에서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는 정치범수용소가 자리 잡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 이곳 정치범수용소가 해체돼 개천정치범수용소에 합병되면서 그 자리에 특수목장이 조성 되었다. 때문에 마두산과 성산을 비롯한 주변의 산들에는 수십 년 전부터 굶주린 정치범들이 껍질을 벗겨 먹은 소나무가 많았다. 그런 마두산과 성산에서 구호나무가 발견됐다는 소식은 들려왔으나 운곡특수목장 위수구역이어서 실제 주민들의 접근은 봉쇄됐다. 이후 김일성의 사망과 ‘고난의 행군’으로 운곡지구에서 발견됐다는 구호나무들은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구호나무조작에 동원되어 그 내막을 잘 알고 있는 혜산농림대학 목재가공학강좌 김하룡 교수는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2005년 12월 사망을 앞두고 구호나무 날조에 동원됐을 때 찍었던 기념사진을 가리키며 울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저 역시 운곡목장에서 연구사업을 진행해 오며 구호나무 조작을 적지 않게 파악하고 있기에 백두의 혈통을 들먹이며 대대로 인민을 기만하는 김씨 일가에 반드시 하늘의 저주가 내릴 날이 오리라고 확신한다.

다음 호에는 운곡목장에서 생산되는 무균돼지, 대리석고기, 프랑스 사향오리, 깨까치 등 김정은의 식탁에 오르는 축산물들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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