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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빨갱이’ 유감(有感)

100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다섯 번이나 언급됐는데...
“6·25때는 ‘인민군’보다 ‘바닥 빨갱이’가 더 무서웠어!”
서울 한복판의 ‘백두수호대’가 ‘독립투사’들이라고?

李  斧

 

“...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되었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입니다...”


 

엊그제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란 단어가 다섯 번이나 언급되었다. 이 나라 많은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 “난데없이 웬 빨갱이타령?”

그리고 아무개 일간지의 대기자라는 분은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읊었다.

 

“‘빨갱이의 탄생을 쓴 김득중은 빨갱이를 죽어 마땅한 비()국민으로 모는 것은 1948년 여순사건 때 양민 학살에서 생겨났다고 했다. 빨갱이 소리 듣기 싫다고 친일 잔재 청산 운운하지 말고 반공(反共) 잔재 청산을 외치는 게 솔직하다는 얘기다... 표현의 자유까지 갈 것도 없다.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를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다름없는 전체주의 국가다...”

 

많은 국민들이 그 대기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측면도 있지 않았나. 한 두 번은 경험했으리라 감히 짖는다.

 

꽤나 오래 전부터 빨갱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우익 꼴통이라 할지라도 이 나라 공공(公共)의 자리나 다중(多衆)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소리 높여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은밀히 몇몇이 대화하거나, 가족끼리 얘기할 때 아주 간혹 언급했었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리면 왠지 기분이 으스스해지는 듯했고, 누군가가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레 겁을 먹게 되고, 주위에서 들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그것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다섯 차례나 힘주어 말씀하셨다. 되도 않게 컴플렉스운운하며 굳이 그 이유를 들쳐 내거나, 미루어 짐작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간에 이제부터는 빨갱이를 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됐다. 역쉬 촛불정권은 뭔가가 달라도 다르다. 그래서 공론화’(公論化)란 걸 그렇게 소중히 여기나 보다. 불편한 진실을 아주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다니...

 

친일파빨갱이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면, 많은 국민들은 오히려 해방 직후 소련군 점령 하에 북녘 땅에서 있었던 사연을 떠올리곤 한다. 그 시절을 경험했던 어른들도 여럿 정정하게 생존해 있고, 직접 경험하지 않은 국민들은 역사 학습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 역사 학습도 친일 잔재로 몰아붙이면 할 말이야 없지만...


 

소련의 조종을 받는 괴뢰, 백도혈통’(百盜血統)의 김성주와 그 무리가 당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내세웠던 구호가 친일(親日) 청산(淸算)!”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자신들에 대한  협조·동조 여부였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史實)이다. 자신들에 대한 반대·적대(敵對)세력에게는 무조건 친일이란 딱지를 붙여 단죄·처형 해댔다. 물론 저들의 협조자에게는 전력’(前歷), 그 딴 거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단다.

그리고 그 정권의 초대 내각(內閣)이 실제적인 친일파들의 집합체였다는 건 이제 이 나라에서 제대로 공부한 중고등학생 정도면 다 알게 되었다.

 

혹시 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 건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과연 부자연스러운 일일까? 특히, 2년여 전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적폐’(積弊)라는 단어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라면, 해방 후 북녘 땅에서의 친일과 엊그제 그 기념사에서의 친일을 연결시켜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 ‘무학자’(無學者)이셨던 어머니로부터 가끔 들은 적이 있다. 육니오 전쟁 통에는 북녘에서 내려온 인민군보다 바닥 빨갱이가 더 무서웠지...”

어쭙잖게 역사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1950625일 북괴군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서울시 인구는 약 1446,000. 628일 서울이 점령되기 전, 이중 40만명이 피난을 했다고 한다. 군인 가족과 공무원, 그리고 북녘에서 월남한 실향민과 반공투쟁을 하던 인사들이 주류를 이뤘다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北進) 길에 올랐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하게 되고, 195114일 서울을 저들에게 다시 내주게 된다. 이때에는 1267,000여명이 서울을 등지고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당시 서울에 잔류했던 약 18만 명의 민간인은 바닥 빨갱이와 노약자·환자들뿐이었다고... 이런 현상이 왜 벌어졌을까?

 

이에 대해 아무개 학자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인민군 점령 하의 3개월, 경찰의 몽둥이로도 부모의 눈물로도 어쩔 수 없던 좌익소아병’(左翼小兒病)에서 수많은 지식인·젊은이들이 이때 벗어났다...”

 

고맙게도(?) 좌익소아병을 치료했던 장본인들은 누구였을까? ‘조선인민군을 대리하여 점령지를 통치했던 바닥 빨갱이가 아니었던가. 팔위에 두른 '은 완장(腕章)'마저도 폼이 났던...

 

엊그제 아무개 일간지의 기사 토막들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김정은 서울 답방을 환영하기 위해 결성된 백두수호대가 트럼프 미 대통령,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의 사진을 담긴 서울남북정상회담 방해 세력 수배전단을 배포하며 선전전을 벌였다...


 

OO () 통일부 장관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때문이라며, “볼턴은 한반도 문제에서 매우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볼턴]을 보면 인디언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을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 없이 잘 했다고 하는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난다는 말도 했다... “[볼턴이] 이번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부탁을 받은 것 같다...

 

기념사를 하신 분과 언저리들은 그 무슨 수호대와 그 () 장관‘민족운동가또는 ‘항일투사로 받들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공론화된 그대로 소리 높여 외친다. 비록 친일파라는 짱돌과 주먹이 날아온다 할지라도...


 

빨갱이!!!”

<本報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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