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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C 기자’를 위한 변명

- 북한 특수군이 아예 안 왔을 수도, 왔었다고 해도 못 밝혀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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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모 일간지 기자로서 현지에 특파되어 취재 활동을 했다는 C모 기자는 ‘북한특수군’ 침투가능성 자체가 없었다고 단언하면서 이를 일관되게 주장함으로써 북한특수군침투설을 주장하는 측으로부터 오랜 기간 비난을 받아 왔다.

 

문제는 C 기자의 주장처럼 북한 특수군이 광주 일원에 얼씬도 안(못) 했을 경우도 있겠지만 20사단 차량행렬 습격. 예비군무기고 탈취. 교도소공격, 도청지하폭약설치, 다수 사상자 발생 등 일반 시민이나 학생 등 민간인으로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군사행동은 북한 특수군이 침투하여 조직적이고 솜씨 있게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자체를 배제하거나 간과해선 아니 될 것 같다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사물을 인식하고 판별하며 이른바 상식이라는 거울에 비춰 사건을 재단하려 들기도 한다. C 기자의 주장대로 북한특수군 침투가 없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는 있지만, 만약 북한 특수군의 침투가 있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C 기자의 눈과 귀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을까?

 

■ 왔다면 누가 왔었을까?

 

어떤 것을 북한 특수군이라 말할 수 있을까? 1980년대 당시 북한 특수군이라면 ▲ 간첩안내 및 호송을 전담하는 노동당 작전부 ▲무장공비를 양성 남파하는 총참모부정찰국 ▲ 육 해상 저격여단, 항공육전대 등 비정규전부대 ▲군단 경보병여단 등 적지에 침투, 습격 파괴 납치 살상 등 유격전을 펼칠 수 있는 역량을 특수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왔다면 얼마나 왔었을까?

 

위에 열거된 특수군 중에 노동당 작전부나 정찰국요원은 상대적으로 소수 정예인원으로 대규모 남파에는 적합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기습 1.21사태 당시 124군부대 후신으로 알려진 특수 8군단 예하 육상. 해상. 공중침투역량이었다면 대량 침투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규모는 1.21사태 30여 명이나 울진삼척사태 120명 이상 대대급병력이 동원 남파됐을 것이라는 (미확인)주장도 없지 않았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 몰랐다면 왜 몰랐을까?

 

◯고도의 은밀침투(隱密浸透)
간첩이나 특수군의 침투의 기본은 은밀침투(隱密浸透)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흔히 듣던바 대로 중공군이 징 치고 피리 불며 밀려 내려오는 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스며든다는 게 은밀침투이다. 북한군은 고등중 5년 졸업 후 17세에 입대하여 10여 년간 복무하게 돼 있어 23~25세 팔팔하게 젊은 특수군은 6~8년 가까이 원숙한 전기(戰技)를 갖춘 ‘만능싸움꾼’으로 전방 지뢰밭에 설치된 잠복초소를 최소거리(30m~50m)를 사이에 두고서 들키지 않고 침투할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완벽한 가장(假裝)

남파간첩이나 무장공비는 침투에 앞서서 임무수행 지역 환경과 활동 대상인 목표의 특성에 알맞게 외모와 행동, 습관이나 신분을 고치는 것을 가장이라고 한다.

 

1980년대 당시 유행했던 ‘장발’과 아군의 장비나 총기를 휴대, 남한 현지에서 사용할 남한말과 교통 통신 및 편의시설 이용 방법, 현지 물가 등 생활풍습습관 등 고도의 ‘현지인(natives)’화 학습훈련과 시험점검에 통과 한 자에게 신분증과 일상소지품 등 증명문건을 소지케 하여 누구로부터도 의심을 받지 않고 정보수사기관의 검문이나 심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치밀한 가장 대책을 세워 이를 몸에 배도록 일상화하는 것이다.

 

◯철저한 흔적인멸(痕迹湮滅)

간첩이나 무장공비 등 소위 특수군의 활동에서 흔적인멸은 최상의 철칙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특수군의 경우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은커녕 참새 발도, 개미 발도 안 남겨놓고 완벽하게 흔적을 지워서 간첩/무장공비/특수군이 침투하여 습격파괴 납치 살인 등 만행을 저지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각되거나 눈치채지 못하게 함으로써 “쥐도 새도 모르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숙달하는 것이다.

◯정말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을까?
1997년 11월 1일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고영복(1924~2011.2.14.)이 1961년 의용군으로 월북한 삼촌에 포섭되어 (*연고지공작이라 함) ‘공수산’이라는 부호로 36년간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다가 체포되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고영복은 1961년 이화여대 강사로 출발, 196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3년 정년 퇴임한 학자였다.

1973년 남북적십자회담 참가, 1981년~1982년 한국사회연구소 소장과 1994년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초대원장을 지내는 등 ‘우익진영 사회학의 거두’행세를 하면서도 누구로부터도 의심을 받거나 경계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1997년 10월 27일 발각된 부부간첩사건으로 꼬리가 잡혀 1997년 11월 1일 체포,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99년 김대중의 사면복권초치로 풀려나 2011.2.24. 사망하였다.

 

고영복이 36년간 고정간첩으로 남북적십자회담에 참여 회담전략을 북측에 제공하는 등 간첩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지위와 사회학의 거두라는 명망 등 신분 및 행동 가장(COVER)이 자연스럽고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 C 기자 등에게...

 

기자란 직업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인지하거나 경험한 ‘사실’에 충실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착시와 환각 환청 등 ‘사실착오’의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총탄이 빗발치고 사신이 나뒹구는 혼란과 공포 속에 인간의 인지능력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며, 그가 출입한 계엄분소나 접촉한 군부도 ‘특수군침투’라는 경우를 상정조차 아니 한 우(愚)를 범했을 가능성을 전제로 ‘철통같은 해안 경계’라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봤으면 한다.

 

기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사실(FACT)이란 스스로 보고 듣고 한 것 외에 객관적 증거와 자료로 대조 분석 평가 및 입증을 거쳐 도달한 결론이라야 할 것이다.

 

오늘날 5.18 당시 “북한특수군 개입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는 있지만, 북한특수군이 은밀침투, 완벽한 외모와 신분 및 행동 가장, 철저한 흔적인멸 등 기법(技法)을 구사했다면, 설령 남파된 북한 특수군과 일시 마주쳤다고 할지라도 까맣게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맺음말

다행인 것은 5.18 특별법 개정을 통해서 대대적인 진상조사가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아 다수의 행불자 문제와 꾸준히 제기돼 온 ‘북한특수군개입’ 의혹 등이 소상히 밝혀지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18문제는 더 이상  사건으로서 5.18 논란 차원을 넘어 역사로서 5.18 진상규명이란 차원으로 승화돼야 한다. 

비록 벌칙을 징역 7년 이하 벌금 7,000만 원에서 징역 5년 이하 벌금 5,000만 원으로 깎아내리기는 했지만, 2020년 12월 9일 정기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내용 중 제 8조(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유포금지)는 가히 대한민국헌법이 정한 국민의 자유를 제한. 강제하는 ‘5.18함구법(緘口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삼국유사 권 2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조에 실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가 떠올라 쓴웃음을 짖게 한다.

 

 

[참고]
 

제8조(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의 금지)

 

①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보통신망의 이용

2.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게시

3. 그 밖에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등에서의 발언

 

②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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