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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 홍사덕전의원이 말했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숨겨진 인간면... 이건희는 어릴때부터 사람보는 눈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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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25일) 타계한 이건희(1942~2020) 전 삼성 회장(이하 직책 생략)은 6선의 홍사덕(1943~2020)전 국회부의장(이하 직책 생략)과 서울사대부고를 1961년(13회) 같이 졸업한 동기로, 서로 60년 넘는 우정을 나누어 온 사이이며, 홍사덕 또한 지난 6월 타계하였기에, 생의 마지막 길도 같은 해에 함께 한 여러 모의 동기였습니다.

 

 

홍사덕은 졸업 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하고 군복무(해병대)를 마친 뒤 1968년 졸업과 함께 중앙일보에 입사하였으며, 일본 와세다 대학을 1965년 졸업하고 1966년부터 같은 그룹사인 동양방송에 재직하고 있는 이건희와 조우(遭遇)하게 됩니다,

 

이건희는 1977년 위의 두 형(맹희, 창희)을 제치고 삼성그룹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고, 홍사덕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하며,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어 이건희씨는 삼성그룹을 세계의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홍사덕은 6선을 하고 16대(2000~04)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하게 됩니다.

 

홍사덕은 이건희의 절친으로 지난날 갖고 있었던 그와의 추억과 일화도 많아 기회있을 때마다 이를 매스컴 등에 많이 소개하였기에, 이를 옮겨봅니다.

 

... ... ... ...


고등학생 이건희 군은 엉뚱하고 싱거운 친구였는데, 방과 후 그가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해서 가던 중 군용 천막 안의 즉석 도넛 가게에 들어갔으며, 비위생적인 곳이지만 그는 털썩 주저앉아 잘도 먹어 치워서, 그의 아버지 함자는 물론, 얼마나 엄청난 부자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속으로 '녀석, 가정형편이 우리 집 수준밖에 안 되는 모양'이라고 단정했다.

 

이건희가 고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요즘으로 치면 ‘일진’과 결투를 할 일이 있었는데,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도서관 뒤에서 싸움을 벌이고 심판을 본 나(홍사덕)는 "이 회장이 말수는 적었지만 승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 '싸움닭'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건희는 미국에서 차관을 많이 들여와야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등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둥 1950년대 후반 고등학생이 생각하기 힘든 매우 독특한 사고를 가졌다.

 

이건희가 나(홍사덕)에게 느닷없이 일본 소학교 교과서 몇 권을 건네면서 “니 일본어 배워놔라. 니 정도면 두어 달만 해도 웬만큼 할끼다”고 했는데, 반일감정이 팽배해있던 시절이라 내(홍사덕)가 “그걸 뭐하러 배우노?” 하고 물었더니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봐야 그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된다”고 하더라는 것.

 

말수가 적은 이건희였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어릴 때부터 남달라 이건희는 고교 때부터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고 하며, 이같은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삼성식 인재경영의 바탕이 됐다.

 

나(홍사덕)의 대학 입시가 가까워지자 이건희가 방을 하나 구해줬는데, 경북 영주가 고향인 나 혼자 서울에 와 입주 가정교사로 남의 집에 기거하느라 자기 공부를 못 하는 사정을 알고 방을 구해준 것이다.

 

이건희의 학창 시절 버릇 가운데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으로 '고집'을 꼽았는데, 나(홍사덕)은 지금까지 그가 입밖에 낸 말을 주워담거나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시시하게는 어느 콧대 높은 여학생과의 데이트를 놓고 걸었던 내기에서부터 크게는 사업 구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과 행동은 일수불퇴였다.

 

이건희의 사람 보는 안목, 사안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으며 그가 와세다대 재학 중 귀국했을 때 드라이브를 하다 제2한강교(양화대교)에 닿았을 때, 내(홍사덕)가 "이게 우리 기술로 만든 다리다. 대단하재?"라고 하자, 이건희는 "이눔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봐라. 한강은 장차 통일되면 화물선이 다닐 강이다. 다리 한복판 교각은 좀 길게 잡았어야 할 것 아이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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