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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일성 역사날조의 극치: 14세때인 1926년 10월17일 만주에서 조선로동당의 뿌리이며 혁명역사의 출발점이라는 반일청년투쟁조직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조작

△1926년 결성됐다면 그 이후 기록이 남아야 하나 이 조직은 1968년‘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이란 책에 처음 등장한다. 즉 1968년 이전의 ‘김일성전기’, 역사서, 교과서, 백과사전 등 모든 문헌과 보도선전물 등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김일성이 만들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선로동당의 뿌리라고 규정하면서도 1945년 10월10일 ‘창당대회’에서 이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은 김일성의 화성의숙 상사로 공산계열 항일운동가인 이종락이 만든‘길흑농민동맹’을 이름만 바꾼 가짜

△김일성회고록은 타도제국주의동맹 전거(典據)로 오히려 남한 출판물 인용해 아이러니

△현대사의 시발점으로 왜곡 사용: 남한 1945년 vs. 북한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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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은 북한이 반일청년투쟁조직으로 조선로동당의 뿌리이자 김일성 혁명역사의 출발점이며 조선현대사의 시발점이라고 주장, 선전하는 김일성의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94주년이 되는 날.

 

북한은 앞서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90주년이던 2016년 10월 17일에는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을 총동원,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치하하는 한편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중앙보고대회를 갖는 등 각종 행사를 벌인바 있다. 북한은 90주년 행사를 앞둔 2016년 10월 15일에는 무수단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김일성이 14세 때인 1926년 10월 17일 만주 길림성(吉林省) 화전현(樺甸縣)의 2년제 정치⦁군사 학교인 ‘화성의숙’(樺成義塾) 재학 때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통한 조선의 해방, 그리고 최종적으로 조선반도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함으로써 전 세계를 공산화한다는 목표아래 ‘타도제국주의동맹’(약칭: ㅌ⦁ㄷ, 트/드로 읽는다)을 결성했다고 밝히고 이를 김일성이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한 최초의 혁명적 청년조직이자 조선로동당의 뿌리로 규정하며 조선현대사의 시발점 즉, 김일성 혁명역사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는 북한 교과서와 역사서,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보도 선전물들의 기술(記述)은 우리 현대사를 김일성 1인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모조리 날조한 것이다.

 

교과서와 역사서들은 김일성이 아버지 김형직이 죽은 후 1926년 6월 만주 화전현의 ‘화성의숙’에 입학했으나 민족주의적 성향의 교육내용에 만족치 못하고 독학으로 ‘공산당선언’ 등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들을 읽고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길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됐다면서 이에 기초해 그해 10월 17일 일본제국주의 타도와 함께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세울 결의를 다진 청년들과 학생들을 망라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이 화성의숙 재학시절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의 날조다. 북한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처음 언급된 공식자료는 평양의 인문과학사가 1968에 출간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백봉(白峯) 지음)이란 책이다. 1926년이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현대사의 시발이라면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다는 보도나 기록이 일제식민통치시대를 포함, 1968년 이전에 있어야 하나 당시 북한의 어느 기록이나 문헌, 언론보도에도 그런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예컨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북한에서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미화, 선전하기위해 간행된 ‘우리의 태양’과 ‘영웅 김일성 장군’에서는 김일성이 1926년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또 1949년에 간행된 ‘조선민족해방투쟁사’에서도 ‘ㅌ·ㄷ’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북한 정권수립후인 1952년에 출간된 ‘김일성장군약전’과 1958년에 나온 ‘조선민족해방투쟁사’에도 ‘ㅌ·ㄷ’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1971년의 ‘력사사전’과 1973년의 ‘정치사전’은 1968년 출간된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에 수록된 내용과 거의 동일하게 ‘ㅌ·ㄷ’에 관한 기술이 나온다.

 

또한 북한의 모든 문헌들은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한 장소가 길림성 화전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1926년 10월 17일 당시 김일성은 화전이 아닌 백두산 기슭인 길림성 무송(撫松)에 있었다.

 

만약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조선로동당의 뿌리라면 △1945년 10월 10일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설치일(현재 북한이 조선로동당 창당일로 지키고 있는 날), △1945년 12월 17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위원회,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임시위원장으로 선출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1946년 8월 28일 ‘북조선공산당’간판 내리고 열린 북조선로동당창당대회, △1947년 2월 17일 제1차 북조선인민회의, △1948년 3월 27일 북조선로동당 제2차 당대회, △1949년 6월 30일 북조선로동당과 남조선로동당 합당을 통한 조선로동당 출범식, △1956년 4월 23일 조선로동당 제3차 당대회, △1958년 3월 3일 제1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 △1961년 9월 11일 조선로동당 제4차 당대회 등 초기 인민회의와 로동당대회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이란 말이 핵심어로 등장할만도 하지만 단 한 번도 언급됐다는 기록이 없다.

 

특히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선로동당의 뿌리라고 규정하면서도 1945년 창당대회에서 이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북한의 문헌 기록상 1968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처음 언급된 타도제국주의동맹은 ‘력사사전’(1971년), ‘정치사전’(1973년)에서 조금씩 언급되다가 1980-1981년 출간된 ‘조선전사’(朝鮮全史)에서 조선현대사의 기점으로 승격된다.

 

북한의 교과서와 역사서를 비롯한 문헌들은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할 때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며 최종 목적은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는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였다”는 강령을 발표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은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로동당규약 전문(前文)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192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공산주의적 혁명조직으로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으며 오랜 항일혁명투쟁을 통해 당 창건을 위한 조직적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에 기초하여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을 건설하였다”고 명시함으로써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조선로동당의 뿌리이자 김일성 혁명역사의 출발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조선로동당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에서 ‘당 우위 국가체제’, 즉 모든 국가기관이 프롤레타리아당의 지도를 받는 국가체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ㅌ⦁ㄷ은 사실은 김일성의 청소년 시절 학교 선배였던 이종락(李鍾洛, 1907-1940)이 1930년 경 조직한 반제국주의 운동단체인 ‘길흑농민동맹’(吉黑農民同盟)의 이름을 바꿔 1926년에 결성한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선양(瀋陽)의 요녕민족출판사(遼寧民族出版社)가 1992년에 출간한 ‘동북지구조선인혁명투쟁자료회편’(東北地區朝鮮人革命鬪爭資料匯編) 727쪽에 수록돼 있다. 이종락은 김일성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화성의숙 선배이며, 국민부(國民府: 1925년 이래 남북만주 일대에서 흩어져 활약하던 참의부(參議府)·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의 3부가 통합해 1929년 4월 요녕성(遼寧省) 신빈현(新賓縣) 흥경(興京)에 본부를 두고 조직된 반공적인 항일독립운동단체) 좌파의 핵심으로 고유수(孤楡樹)에서 민족주의 계열 조선혁명군의 중대장으로서 ‘길흑농민동맹’을 결성했다. 1930년 전후, 만주의 장춘 서쪽과 이통현(伊通縣), 회덕현(懷德縣) 일대의 한인 농촌 마을은 이종락의 이 ‘길흑농민동맹’ 지배하에 있었는데 이 동맹의 목적은 반제국주의 운동이었고, 이를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으로 불렀다는 것이 중국측 기록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1931년 3월 17일자 중국공산당 남만특위(南滿特委)보고서도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중심 지도자는 이종락이며 근거지는 고유수, 회덕현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출신인 이종락은 만주에서 공산계열 항일활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돼 징역형을 받은 후 변절했다. 출옥 후 일경의 김일성 귀순공작에 중재자로 나섰다가 김일성의 상관인 양정우(楊靖宇)에게 붙잡혀 총살당했다.

 

일본의 북한문제전문가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는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전국가로’(서동만⦁남기정 역, 서울: 돌베개, 1998)에서 이종락의 조선혁명군길강(성)지휘부(朝鮮革命軍吉江(省)指揮部)의 다른 이름이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이라고 말했다. 조선혁명군길강지휘부는 당시 조선혁명군 5중대장으로 있던 이종락 등의 소부대가 북만주 지부 조직에서 이탈해 창설한 조직이다. 당시 14세인 김일성은 조선혁명군의 참사(하사관)로서 나이가 10세정도 많은 이종락의 부하였다. 1931년 이종락의 부대는 일본 관헌에 의해 완전 괴멸됐다. 이종락이 1931년 1월 28일 경찰에 체포돼 조선혁명군길강지휘부가 해체됐기 때문이다. 조선혁명군길강지휘부는 같은 해 5월 김일성의 친구 최창걸(崔昌傑, 생몰년 미상)에 의해 세화군(世火軍)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고 다시 동방혁명군으로 개칭됐지만 최창걸이 그해 11월 국민부 조선혁명군의 양세봉(梁世奉, 1896-1934) 부대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명맥이 완전히 끊겼다. 이종락의 부대에 소속된 김일성은 체포를 면해 1931년 초 어머니 강반석(康盤石)이 살고 있던 길림성 안도(安图)로 피신했다. 만약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면 그는 이종락의 체포와는 관계없이 길강지휘부에 머무르면서 동료 요원들과 함께 활동을 계속했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사실 또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김일성이 만들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북한은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마치 김일성의 업적인양 조작,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김일성이 19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주장하는 전거(典據)는 아이러니하게도 광복 직후 서울에서 출간된 최형우(崔衡宇, 이명(異名): 崔一泉)의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2집, 서울: 동방문화사, 1945년 12월 10일 발행)라는 점이다. 일제시대 만주에서 동아일보 장춘(長春)지국장을 지냈던 최형우는 이 책에서 김성주(김일성)가 1926년 만주 이통현(伊通縣)과 회덕현(懷德縣)사이 즉 이⦁회(伊⦁懷)간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기술했으며, 1966년 8월경 처음 이 책의 존재에 주목한 북한은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다.

 

최형우는 김일성과 함께 이종락 밑에 있었던 사람으로 김일성의 연장자였다. 그는 1945년 해방 후 서울에서 ‘동방문화사’ 기자로 일했으며 남한 정계에 진출, 조선혁명당 정치부장, 신진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일성장군환영위원회 위원, 민족자주연맹 집행위원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전쟁 기간 중 서울을 점령한 북한 당국에 체포돼 1950년 11월 5일 처형됐다.

 

하지만 최형우의 이 책은 객관적으로 인정받기에는 중대한 오류를 많이 범하고 있다. 우선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는 1926년이라는 연도가 1930년의 착오로 보인다. 최형우는 김일성이 1926년을 언급하면서도 책의 뒷부분에서는 자신이 1930년 가을 장춘(長春) 서쪽 회덕현 오가자(五家子)의 삼성학교(三成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김일성이 오가자에 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만났다는 것을 근거로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1926년은 1930년의 오기로 보인다. 1930년은 이종락이 반제국주의 운동단체인 ‘길흑농민동맹’(吉黑農民同盟)을 결성한 시점이다.

 

최형우의 이 책은 또한 김일성이 다녔던 길림(吉林)의 육문중학(毓文中學)을 제5중학이라고 잘못 기술하고 있다. 최형우는 또 김성주(김일성)에게 ‘一星’이란 아호까지 지어줬는데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최형우는 이종락 주도의 타도제국주의동맹과 김일성의 관계를 과장해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한 것처럼 책을 썼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6.25당시 최형우를 처형까지 했을까. 북한의 초기 기록과 최형우의 기록이 어긋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해방직후 북한에서 발간된 김일성관련 문헌에는 이종락을 김일성의 부하로 묘사하고 있었지만 최형우의 책에서는 김성주의 상사가 이종락으로 기술돼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로동당의 뿌리를 찾아준 최형우에게 고마움을 뒤늦게 간파한 북한은 현재 최형우의 유해를 애국열사릉에 안치하고 있다. 김일성이 1989년 최형우의 유가족을 불러서 환대했다는 기록이 로동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로동신문 1989년 4월 3일자에는 ‘태양과 일생 ­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저자인 최일천(최형우)선생께 베풀어 주신 은정에 대한 이야기’란 기사가 소개돼 있다.

 

최형우를 처형한 지 수십년이 지난후 그가 쓴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내용이 북한의 ‘조선전사’(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9-1992)와 ‘김일성회고록’(제1집, 1992) 등에 그대로 인용돼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는 전거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68에 출간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도 실제로는 최형우의 저작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김일성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그의 화성의숙 입학시기를 6월로 주장하지만 1968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이라는 책이 나올 때까지 북한의 전기 작가들은 김일성이 소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26년 3월경에 화성의숙에 입학해 6월까지 다닌 것으로 기술했다. 그랬던 것이 1972년에 아무런 설명없이 갑자기 1926년 6월에 입학한 것으로 변경됐고 ‘세기와 더불어’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타도제국주의동맹이 1926년 10월 17일에 결성됐다”는 역사기술 자체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김일성은 ‘ㅌ‧ㄷ’를 결성한 장소를 화전(樺甸)이라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기술함으로써 또 하나의 조작을 일삼고 있다. 김일성은 1926년 10월 17일 당시 화전현(樺甸縣) 휘발하(輝發河)의 관가(寬街)를 떠나 멀리 남쪽, 백두산 기슭인 무송(撫松)에 있었다. 최형우도 ‘ㅌ‧ㄷ’ 결성장소가 화전현이 아니라 이통현과 회덕현 사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에서 ‘ㅌ⦁ㄷ’가 언급되기 시작한 1968년을 주목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1967년에 김일성이 수령제를 구축하면서 자신의 반대세력이나 정적을 모두 숙청한 때가 이듬해인 1968년이다. 이는 김일성의 과거 진실을 알고 있던 기존의 반대세력이 모두 제거됐기 때문에 김일성 유일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ㅌ⦁ㄷ’을 부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투쟁무대를 넓히기 위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개편해 1927년 8월 28일 ‘반제청년동맹’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을 결성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1991년 2월 1일에는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통해 8월 28일을 ‘청년절’로 지정한다.

 

김정일은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56주년인 1982년 10월 17일 <조선노동당은 영광스러운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라는 논문에서 “ ‘ㅌ⦁ㄷ’ 결성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조선혁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선언이며 우리나라에서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형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창건을 투쟁의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ㅌ⦁ㄷ’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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