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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기고]소설가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15)조정래가 부활시키자고 하는 반민특위는 공산혁명의 도화선이다

- 일본 유학을 갔다오면 친일파에 모두 민족 반역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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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趙廷來)는 1943년 8월 17일 전남 순천에서  출생하여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왔다.

 

장편소설 《태백산맥》으로 일약 스타가 된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좌익의 선동가로 나섰다. 그러나 《태백산맥》을 바라보는 시선은 둘로 나눤다. 그중 부정적인 시선은 과연 《태백산맥》이 문학인가 하는 것이다. 문학적인 잣대로만 바라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방 이전에서부터 6.25사변이 일어나고 북괴군이 쫓겨갈 때까지 전남지역 좌익의 활동을 고스란히 담아낸, 마치 좌익의 발자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좌익을 옹호하고 우익을 비판하는 것 외에는 나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조정래는 언제, 왜 좌익이 되었을까.

조정래는 아버지 조중현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조중현은 승려였으나 당시 일본의 불교황국화 정책에 따라 결혼을 했고 4남 4녀중 넷째로 조정래가 태어났다. 친일파로 따지면 조정래의 아버지 조중현이 으뜸이 아닌가 싶다.

 

조중현은 해방 이후 본인이 적을 두고 있던 사찰의 토지 분배(재산 분배)의 문제를 놓고 주지와 대립하다 쫓겨났고, 조정래가 남국민학교(현 남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인 1949년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하였는데, 바로 이듬해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조중현이 소작농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던 시절이 바로 이때부터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척박한 환경에서 승려로 살았지만 1953년 운이 좋게 벌교상업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되었다.

 

조정래는 아마도 조중현의 사회에 대한 비판인식을 어릴 때부터 보고 배웠을 것이며, 해방 이후부터 빨치산에 대해서도 직접 보고 느꼈을 것이다. 당시 순천, 벌교 등은 남조선 혁명전선이 기성을 부릴 때였고, 남노당 전남도당의 근거지가 있던 곳이라서 빨치산에 부역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야밤에 보급투쟁을 위해 마을로 내려오는 빨치산을 향해 흔쾌히 식량을 내놓는 부역자들을 보며 조정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릴적부터 몸소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이 좌익사상일 것이다.

 

1959년 서울로 상경하여 아버지가 전근한 서울 보성고등학교에 입학한 1년 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농촌 사회활동에 뜻이 있어 이과반에 적을 두고 있던 그는 3학년에 이르러 국문과로 진학 목표를 세우고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며, 대학에서 전공과목과 함께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따서 1966년에 졸업하고 1970년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서 근무하던 중에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첫회추천되어 등단했다.

 

조정래가 내재되어 있던 좌익적 이념을 외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5월 전두환 정권에 맞선 광주사태가 일어난 직후 광주를 방문하게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1983년 6월부터 《현대문학》에 《태백산맥》 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좌익임을 표출했다. 

 

누적 판매부수 330만 부를 돌파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태백산맥》은 3부가 나온 1988년 하반기부터 조정래는 새벽마다 걸려오는 공갈협박 전화에 시달렸고 4부를 쓰던 1989년부터 모든 수사관이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으며 출판사 사무실로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을 만큼 그때부터 우익의 적이었다.

 

1994년 8개의 반공단체들로부터 조정래는 5백여 개에 달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시 사법사상 가장 긴 고발장)당하게 된다. 경찰의 출두 요구를 거부한 끝에 검찰로 넘어간 《태백산맥》의 이적 혐의에 대한 수사는 1998년에 수사 날짜가 통보되었는데, 당초 반공단체가 제시했던 5백여 개가 넘는 혐의 사실을 120여 개로 간추리고, 그 120여 개의 혐의에 대한 '객관적 자료'(국회 증언록이나 행정관청의 발간물 등 국가기록물 및 국가가 납본필증을 내준 서적)를 조정래에게 요구하였으며 한 가지라도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유죄혐의가 될 수 있음을 통보하였다.

 

길고 긴 재판으로 결국 2005년 5월에 《태백산맥》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되었다. 이때가 노무현 정부때다. 노무현 정권이 면제부를 준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반공단체는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경찰과 검찰의 대공수사팀도 사라졌다. 마치 《태백산맥》에 나오는 빨갱이들이 점령한 때처럼 조정래가 설치는 것이다. 완장을 찬 것처럼 반민특위를 만들어서 민족정기를 세우겠다는 조정래, 이자는 현재 6.25때 북괴군이 순천과 벌교에 들어온 것처럼 인공기를 흔들며 환희의 미소로 미친듯이 날뛰는 것이다.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들고 지주(부자)들을 끌어내어 인민재판으로 즉결 처분하고 싶은 것이다.

 

조정래의 기사 전문

"지금 저의 주장은 반민특위는 반드시 민족정기를 위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150만, 60만 하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질서가 되지 않고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두 번째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 그들을 일본의 죄악에 대해서 편들고, 왜곡하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자들을 증발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적극 나서려고 합니다.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 이것은 사회적,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다스려야 됩니다. 그런 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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