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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만주의 조선인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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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의 조선인들 ■■■

 

 

(17회/20회)

 

(제6부) 주요 사건별로 본 일본인들의 잔혹상 - 부록

 

(일본인들의 잔혹상 목격담)

리턴보고서는 “1919년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 당국이 취한 여러 차례 가혹한 조치”에 대해 언급했다. (Suppl. Doc. p. 263) 다음 설명은 언론보도에서 인용한 것이다.

 

’장로신학교 학생들은 잡혀서 옷을 홀랑 벗기고 거친 나무십자가에 묶인 채 맨발로 발가벗겨 길거리를 헤매도록 강요당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두목(예수님을 지칭)이 십자가를 나른 것처럼, 그들도 똑같은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스타, 1919년 5월 26일자)

 

’평양에 있는 크리스천 학교의 선생인 뉴욕의 그레이스 딜링함(Grace Dillingham)양이 플러싱에 있는 마담 롬프레이(I.L. Lomprey)에게 보낸 3월11일자 편지에서 최근의 일본에 대항하는 봉기 당시 조선에서의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그 편지는 조선의 여학생들이 전신주에 묶인 채, 일본 헌병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했다; 감옥에 있는 크리스천들은 십자가에 묶인 채 옷을 벗겨 매를 맞았다; 두 명의 미국인 여자들이 일본경찰에 의해 두들겨 맞고 교회는 약탈당했고 성경은 불태워졌다…. 라고 말했다.‘ (워싱턴 디시 이브닝 스타, 1919년 5월 6일자)

 

’일본은 조선인 반란자들에 대해 전혀 헤아림이 없다. 이 사진에서 보여 주듯이 혁명에 대한 벌은 사형이다... 사진은 희생자가 총살당한 직후 찍었다. 그들은 꿇어 앉은 상태로 놓여졌고 그들의 팔들은 조악하게 만든 십자가에 뻗은 채 묶여 있었다. 독립을 쟁취하려는 최근 조선인들의 시도가 전(全)반도를 휩쓸었다. 수백개의 장소에서 사생결단의 폭동이 있었고, 대량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 트랜스크립트, 1919년 5월 15일 자)

 

1919년 5월31일자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는 이렇게 덧붙였다:

 

’조선인들은 어떤 무기도 소지하지 않았지만, 군인들은 군중에 발포했고 구경꾼들을 쓰러뜨렸다. 또 소녀들의 머리채를 끌었고, 나이든 남자와 여자들을 걸을 수 없을 때까지 마구 때린 후 일본인 독립교회까지 끌고 가서 거기서 십자가 위에 뻗어 있도록 한 후 스물아홉 차례 매질을 했다 …. 어제는 백명을 감옥으로 데려왔는데, 그중 두명은 아직 죽지는 않은 채 한 차 위에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한 일본인 비기독교인은 ”너무나

놀라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일본인 광고주는 수없이 많은 잔혹한 이야기들을 실었다. 우리는 단지 1919년 4월29일 나온 긴 보도로부터 다음 몇 줄을 인용해 본다.

 

’... 어느 이른 오후 군인들이 마을로 와서 모든 남자교인들은 교회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에 따라 그들이 교회 안에 모였을 때, (우리의 정보 제공자에 의하면, 그 수가 대략 30명 정도로 추산되었는데) 그 군인들은 그들에게 총을 쏜 후 총검으로 확인 사살을 했다.

 

이후 그들은 교회를 불살랐지만 바람의 방향과 교회의 중앙위치가 (불이) 위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군인들은 일일이 불을 지른지 얼마 후 떠났다...’

 

- 계속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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