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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세 유학일기 20]에필로그ㅡ

-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 미국 펜실바니아대학교 경제학 박사, 전 한국산업기술정보원 원장
- 전 대구사이버대학 총장 겸 한국원격대학협의회 이사장,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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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5월 어느 날 내 나이 31세에 논문 최종 심사를 하였다. 디펜스는 사실 형식적이었다.

 

심사위원은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어렵고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고 한국제도에 관해 자기들이 궁금한 것을 물은 것 같다. 실러교수는 그 전에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나에게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이야 너무나 평범한 이론이지만 당시에는 최신의 이론과 최첨단의 실증기법으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미적분과 확률이론을 활용하여 디폴트 리스크가 있는 불확실성하에 은행의 신용배급이론이라든지 토빈-브레이나드(Tobin-Brainard)일반금융모델은 당시 최신의 이론이고 모델이었다. 또한 통계기법도 2SLS(2단계 최소자승법)을 사용하였고 시뮬레이션을 통한 정책효과도 예상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당시에 합리적 기대이론을 실러교수에게서 배우면서 대한민국에서 내가 처음 그리고 내만큼 그 이론을 아는 사람도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디펜스가 쉽게 끝나고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마감하였다.

 

나는 유학기간 서둘러 학위만 하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미국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 비교적 여유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논문도 제대로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용에 충실하였다. 한편 코스웍 중간에 연구조교를 하면서 일을 배운 것도 시간은 더 많이 걸렸지만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기회가 다시 더 있을 것 같지 않은 생각을 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경제학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먼저 논문 전 과정을 성실하게 지도해준 실러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논문 쓰는 과정에서 실러교수의 따뜻한 인간성과 성실성을 느낄 수 있었고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은 것은 큰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로하심에도 불구하고 실러교수를 소개해주고 늘 나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준 브룸필드 교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어머니를 비롯하여 작은 아버지, 형님 등 가족이 있었다.

 

그분들이 이제 모두 저 세상에 불귀의 객이 되었지만 내가 학위를 하고 성공하기를 가장 원했던 분들이다. 또한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친구, 서울에서 성원을 보내준 친척, 친구들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사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아주 어려웠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유학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것 자체가 남이 누릴 수 없는 큰 복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도저히 내가 받은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 것 같다.

 

인생의 대차대조표에서 빚이 더 많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모두 내가 장래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나에게 투자하신 분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분들의 기대에 충분히 보응한 것 같지 않다. 너무 일찍 성공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싶다.

 

내가 박사학위를 할 때만 해도 경제학 박사학위 소지자가 별로 없었다. 학회를 하면 100명이 채 안되었다. 서울의 유수한 대학과 정부출연기관에 있는 박사들은 서로 다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줄잡아 1000명도 넘는 것 같다. 8~90년대 미국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희소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한국경제도 그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환상도 사라졌다. 그래서 미국박사에 대한 평가절하가 계속되었다. 이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프리미엄을 가지기에는 너무 세상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해온 사람들이 전혀 사회에 대한 기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운 식견과 지식이 한국의 선진화를 앞당겼다고 확신한다. 개발연대 초기만 하드라도 한국은 수입대체산업으로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는 국내학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는 한국은 세계 속에서 무역을 통해 외화도 벌고 기술도 습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정책과정을 통하여 한국은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의 기여는 지금 시대가 변하였다고 폄하하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나는 그런 역할에 작은 조약돌이 된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졸고를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 준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더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며 대미를 마감한다.

 

- 끝 -

 

 

               그동안 20회에 걸쳐 귀한 글 보내주신 자유시장경제포럼 이영세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 리버티코리아포스트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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