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3 (목)

  • 구름많음동두천 24.6℃
  • 구름많음강릉 26.3℃
  • 구름많음서울 24.7℃
  • 구름많음대전 25.5℃
  • 구름조금대구 29.4℃
  • 구름많음울산 29.2℃
  • 구름많음광주 27.5℃
  • 구름조금부산 27.8℃
  • 구름많음고창 25.2℃
  • 구름조금제주 28.2℃
  • 구름많음강화 24.6℃
  • 구름많음보은 24.6℃
  • 구름많음금산 23.2℃
  • 구름많음강진군 26.6℃
  • 구름많음경주시 28.9℃
  • 구름조금거제 27.7℃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대한민국 건국의 숨은 주역-서북청년회(4)

- 다시 읽는 《서북청년회가 겪은 건국과 6.25》/손진 지음, 건국이념보급회 출판부

URL복사

국방경비대에 공산주의자가 침투하다

 

 

함북 청진 출신 임일은 좌익에게 ‘장군’이라고 불렸다. 그는 충남과 호남 일대에서 명성을 날렸다. ‘장군’은 그때 전북 군산 어느 좌익 신문이 그에게 붙여준 야유성 별명이었다.

 

서북청년들은 1946년 11월 서북청년회가 정식으로 출범하자 그 세력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로 확대해 갔다. 서울 서북청년회 중앙 총본부는 1947년 6월 대전에 남선파견대를 설치했다. 임일은 이 남선파견대의 대장이었다. 문제가 생기는 곳에 대원을 파견했다. 파견 인원은 한 번에 적게는 20명, 많게는 40명이었다.

 

임일은 인천 애관극장과 광주 금남로 피습 등 여러 사건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더욱이 미군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지목해 체포와 구금을 반복했다. 미군 첩보부대 CIC가 그를 체포해 9번 구속되었고, 미군정 경찰이 구속한 것도 5번이었다. 말년에는 개신교 목사로 경기도 고양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대전도 좌익이 강한 지역이었다. 유성에서 이창복 단원이 좌익에게 살해되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충북 옥천, 영동, 청주, 보은, 제천에서도 공산당과 충돌했다. 서북청년들은 전북 김제, 남원, 군산에서도 목숨을 잃었다. 광주, 목포 등 서북청년회 합숙소가 습격당하기도 했다.

 

1947년 6월에 있었던 충북 영동 사건은 참혹했다. 영동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좌익들이 밤중에 서북청년회 합숙소를 습격해 자고 있던 대원 10명을 대검으로 살해했다.

 

국방경비대는 1946년 미군정이 임시로 조직한 군대였다. 창설 당시 만주군, 일본군, 지원병, 광복군 등 다양한 전력을 가진 사람들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일반 사병은 길거리에서 모집하기도 했다.

 

미군정은 좌우합작이라는 중립 정책을 내걸었다. 사상 검증 없이 국방경비대에 입대할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좌익에서 계획적으로 많은 공산당 당원을 입대시켰다. 특히 장교급 좌익 가운데는 일제강점기에 대학을 다닌 학도병 출신이 많았다. 제주 4‧3, 여수·순천 사건에서 주동 인물은 대부분 학도병 출신 장교들이었다.

 

영동 사건을 보고받은 임일은 허태화 훈련부장에게 대전 근처에 있는 대원들을 집결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우선 대원 20명과 영동 현장으로 달려갔다. 제일 먼저 간 곳은 희생된 대원 10명의 시신이 안치된 영동세무서 목욕탕이었다.

 

반공주의자였던 영동세무서 관세과장 박시찬이 처참하게 널려 있던 대원들의 시신을 급한 대로 세무서 목욕탕에 옮겨 놓았다. 임일은 동지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이럴 수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피투성이가 된 동지들을 붙들고 통곡했다.

 

임일은 경비대 내부를 잘 아는 세무서 관세과장에게 좌익 사병이 모여 있는 막사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사대 20명은 5명씩 4개 조로 나누어 새벽 2시에 국방경비대를 습격했다. 우선 좌익이 몰려 있는 막사에 불을 지르고 매복 중인 대원들이 일제히 돌진해 들어갔다. 무기는 몽둥이가 전부였다.

 

한밤중 싸움은 격렬했다. 양측 모두 부상자가 잇따라 나왔다. 임일은 물론 허태화와 장훈도 부상을 입었다.

날이 밝자 국방경비대 책임자, 경찰서장, 태극청년회, 독촉국민회 회장 등이 모여들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타다 남은 막사 판자 밑에서는 좌익 서적이 무수히 나왔다.

 

임일은 현지에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 김구를 만나기 위해 경교장으로 갔다.

 

김구는 “해방이 되었느니 독립을 해야지 않겠나. 앞으로는 이론을 가지고 싸우고 서로 죽이면 안 되네. 내가 유동열 통위부장과 송호성 장군에게 잘 수습하라고 할 테니,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게. 공산주의자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우습게 알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진영은 그러면 안 되네”라고 훈시했다.

 

임일은 한국독립당 당원이기도 했지만, 그의 장인 남 목사가 김구의 심복 부하였다. 그 때문에 임일은 김구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영동에 내려와 보니, 송호성 국방경비대 사령관, 미 육군 소령, 미 군정청 경무부 감찰관, 충북 경찰국 정보과장 등이 경찰서장실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경비대 습격을 총지휘한 임일을 체포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임일은 회의장에 들어가 말했다.

“이번 사건을 지휘한 임일입니다. 이 사건의 원인부터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북청년회가 당한 현장도 한번 보시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을 찾은 일행은 처참한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임일은 말했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경비대원이 민간인을 이렇게 학살할 수 있습니까?”

 

영동서장은 “국방경비대원 중에 좌익이 많다. 그들이 지방 민간 좌익과 내통하여 횡포를 부려 시민이 불안해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송호성 국방경비대 사령관이 사과했다. 국방경비대 책임자들도 군대 안에 좌익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계속>

 

 




포토뉴스

더보기



외교

더보기
진중권 교수, 송영길의원에 "성추행은 '문화'가 아니라 범죄...괜히 더듬어만지당이겠나?" 직격탄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19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 현지 직원의 ‘엉덩이 툭툭’ 성추행 의혹에 대해 "문화의 차이도 있다고 본다"며 "같은 남자끼리 배도 한 번씩 툭툭 치고 엉덩이도 치고 그랬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난 뉴질랜드 정부가 지난 2017년 12월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한국 외교관 A씨가 현지 남성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제기하며 직접 조사를 요구한 사건관련 발언이다. A씨는 피해 직원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3차례 성추행한 의혹을 받았고 뉴질랜드 사법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2월 임기 만료로 뉴질랜드를 떠났다. 외교부는 자체 조사를 통해 A씨에게 2019년 2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피해자가 지난해 10월 뉴질랜드 경찰에 신고했고, 뉴질랜드 사법 당국은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한국 정부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관련 문제를 제기하자 외교부는 필리핀에서 근무하고 있던 A씨를 최근 귀국 조치했다. A씨는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추행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것

오피니언

더보기